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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6 요로센! #009 쿠스미 코하루

2009/12/20 16:24 | Posted by Gen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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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5 요로센! #008 쿠스미 코하루

2009/12/20 16:21 | Posted by Gen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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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4 요로센! #007 쿠스미 코하루

2009/12/20 16:16 | Posted by Gen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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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3 요로센! #006 쿠스미 코하루

2009/12/20 16:08 | Posted by Gen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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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つんく♂ 형님의 ここにいるぜぇ

멋있는 무대 메너...

색다르게 보여요~~~

步いてる-모닝구무스메

2008/03/25 20:59 | Posted by Gendou

步いてる[아루이테루]
우리 아침처자들 저력을보여준 싱글
3년반만에 오리콘 정상을 차지한....
6기 7기가 처음 정상의 기쁨을 맛본싱글

*모닝구무스메는 여성 그룹으로써 아래 오리콘 싱글 주요 5 부분에서 최고 기록을 독점하고 있다.*

*여성 그룹 싱글CD 총 판매고 1위*
2007년 4월 발매한 33번째 싱글 「悲しみトワイライト」의 발매 첫주, 싱글CD 총 판매고 1,103.7만장을 달성하였고, 해당 싱글CD의 집계상 최종판매까지 1,108.5만장을 기록하여 그전까지 1위였던 핑크 레이디를 제치고 1위를 달성하였다. 더불어 해당 싱글CD는 5월 8일 현재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초등장 2위를 기록하였다. 통산 CD 판매량이 1,000만장을 돌파한 것은 핑크 레이디, SPEED에 이어 여성 그룹 사상 3번째의 일이다(19번째 싱글 「シャボン玉」에서 1,000만장 돌파).
*여성 그룹 싱글CD 오리콘 1위 횟수* : 10개 (역대 최다)
2003년 4월 발매한 18번째 싱글 「AS FOR ONE DAY」로 그전까지 1위였던 핑크 레이디와 동률을 기록하였고, 2006년 11월 발매한 31번째 싱글 「歩いてる」로 핑크 레이디를 제치고 단독 1위가 되었다.
*여성 그룹 싱글CD 오리콘 1위 연속기록 년수 : 6년 (1998~2003년)*
1998년 9월 발매한 3번째 싱글 「抱いてHOLD ON ME!」로 기록이 시작되어, 2000년 1월 8번째 싱글 「恋のダンスサイト」로 그전까지 1위였던 핑크 레이디와 프린세스·프린세스가 가지고 있던 3년 연속과 동률을 기록하였다. 2001년 8월 발매한 12번째 싱글 「ザ☆ピ~ス!」로 단독 1위를 달성하여, 2003년 4월 발매한 18번째 싱글 「AS FOR ONE DAY」로 6년 연속 지속되었으나 2004년에 발매한 싱글 CD 중 오리콘 1위를 달성한 곡이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중단되었다.
*여성 그룹 싱글CD 오리콘 탑10 횟수* : 35개 싱글 모두(역대 최다)
2002년 11월에 발매한 15번째 싱글 「Do it! Now」로 그전까지 1위였던 MAX 및 Wink와 동률을 달성하였고, 16번째 싱글 「ここにいるぜぇ!」로 단독 1위를 달성하였다. 이 탑10 34회 기록은 솔로 아티스트도 포함한 여성 아티스트 부분에서는 역대 단독 2위가 된다(1위는 하마사키 아유미의 39회). 33번째 싱글 「悲しみトワイライト」로 고이즈미 쿄코 및 아무로 나미에와 동률을 달성하였고, 34번째 싱글 「女に 幸あれ」로 역대 단독 2위로 뛰어올랐다.
*여성 그룹 싱글CD 오리콘 탑10 연속기록 년수* : 10년(역대 최장)
1998년 1월 데뷔 싱글 「モーニングコーヒー」로 기록이 시작되어, 2003년 2월 17번째 싱글 「モーニング娘。のひょっこりひょうたん島」로 그전까지 1위였던 MAX의 6년 연속 기록과 동률을 달성하였고, 2004년 2월에 발매한 21번째 싱글 「愛あらば IT'S ALL RIGHT!」로 단독 1위를 달성하였다. 2007년 2월 발매한 32번째 싱글 「笑顔YESヌード」로 10년 연속을 기록하였으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 그룹 싱글CD 오리콘 탑5 연속기록 : 33개(35번째 싱글이 6위에 오르며 연속행진이 멈추게된다.)*
*음악DVD 부문 오리콘 1위 횟수 : 12회*
「1개 점포에서의 동일CD 1일 판매고」 세계 기록 : 15,612매(1997년 11월 3일 오사카 HMV 신사이바시점 「愛の種」 직접판매 이벤트에서)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 - 모닝 무스메 버전

본래 이 노래는, 일본의 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오냥코 클럽(일본 아이돌 산업 최전성기에 등장했던 멤버가 30명이 넘었던 초거대 여성 아이돌 유닛. 쿠도 시즈카를 비롯 수많은 스타들이 여기를 거쳐가심)이 불렀던 히트곡으로 건전(?)해 보이는 멜로디와는 정반대로 당시 외설 논란을 일으켰던 문제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방송 심의에 매우 위태해 보이는 가사
セ-ラ-ぶくをぬがさないで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
いまはダメよ がまんなさって
지금은 안돼요 부디 참아줘요

セ-ラ-ぶくをぬがさないで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
いやよダメよ こんなところじゃ
싫어요, 안돼요 이런 곳에서는..

おんなのこはいつでも MI MI DO SHI MA
여자는 언제나 MI MI DO SHI MA("뭐든지 알고 있어요." )
おべんきょうしてるのよ AH- まいにち
공부 좀 해두라구요 AH- 매일말이죠.

ともだちよりはやく エッチをしたいけど
친구들 보다는 빨리 엣찌를 하고 싶지만
キスからさきにすすめない おくびょうすぎるの
키스보다 더한 건 못해요 너무 참는건가요?
しゅうかんしみたいな エッチをしたいけど
잡지에서 나오는것 같은 엣찌를 하고 싶지만
すべてをあげてしまうのは もったいないから あげない
전부 해버리는 건 신비감이 없잖아요 하지말아요

セ-ラ-ぶくをぬがさないで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
スカ-トまで まくれちゃうでしょ
스커트까지 올리면 어떻게 해요
セ-ラ-ぶくをぬがさないで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
むねのリボン ほどかないでね
가슴에 리본은 풀지 말아줘요

おとこのこはそのどき どうなるの?
남자들은 "그"때 어떻게 되는건가요?
きょうみしんしんしちゃうのよ AH- ふしぎね
흥미진진 한걸요 AH- 신기해요

デ-トにさそわれて バ-ジンじゃつまらない
데이트를 초대받아도 처녀인 채로는 시시해요
パパやママはしらないの あしたのがいはく
아빠나 엄마는 모르는걸요 내일의 외박
ちょっぴりこわいけど バ-ジンじゃつまらない
조금은 무섭지만 처녀인 채로는 시시해요
おばんになっちゃう そのまえに
아줌마가 되어버리기 전에

おいしいハ-トを たべて
달콤한 이 마음을 먹어주세요




   오냥코 클럽에 대해서



9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층쿠의 '할로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모닝구 무스메' 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우리나라에 알려졌지만 그때까진 생소한 그룹이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많은 건지 분간이 안되는 멤버들과 아직 어린 중학생이나 끽해야 막 고교에 입학한 멤버들이 보일듯 안보일듯 묘하게 보여주는 섹스어필과 귀여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은 특이한 것을 하는구나' 라는 정도의 엽기 그룹으로만 보였었다.

다양한 취향의 팬을 끌어들이면서, 또 '유닛(Unit)' 이라는 개념으로 그룹안에서의 새로운 매력을 가진 그룹을 창조하고, 부가적인 효과를 내는 이 그룹은 졸업이라는 것으로 나이가 들은 멤버를 솔로로 데뷔시키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는 식으로 그룹 자체의 매력을 끊임없이 유지해왔고, 상당히 오랜기간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그 안의 초기 멤버들이 대부분 졸업하고 다른 아이들로 채워졌다고 해도 그 그룹이 '모닝구 무스메' 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일단 최근의 모닝구 무스메가 그 자체의 한계로 인기가 많이 시들해졌다는 것은 여기선 논외로 한다)

남자 아이돌로 현재는 일본의 국민 연예인 급의 자리를 차지한 스맙도, 사실은 일본 아이돌 산업을 가장 체계적으로 먼저 정립했다고 하는 쟈니즈 그룹에서 한참 어린시절에 데뷔하여 많은 고난끝에 올라온 그룹이다. 킨키키즈도 그렇고 뭐 다들 아시는 일본 아이돌 사업의 규모가 이만큼 크고, 굉장히 오래됐다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오냥코 클럽' 은 바로 그 모닝구 무스메 시스템의 원조격이 되는, 무려 85년에 데뷔한 아이돌이다. 모닝구 무스메의 독특한 시스템은 최초가 아니라 사실 이 오냥코 클럽이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오냥코 클럽이 나오던 시대의 일본 예능계는 그야말로 아이돌 홍수였다. 민간방송국이나 케이블 채널이 범람하면서 활동할 아이돌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늘어갔다. 그 바람을 타고 오랜기간 아이돌과 예능사업의 연관성을 연구해온 쟈니즈 그룹의 총수인 쟈니는 그때를 계기로 자신의 심미적인 소년애를 발휘하여 수많은 남자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오게 되었고, 여자아이돌은 그야말로 방송에 공급될 아이들이 많이 필요해지자 '보통 여자아이도 예능인이 될 수 있다' 는 식으로 정말 절제없이 누구나 예능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때의 아이돌 사업은 범람기이자, 혼란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아이돌들의 활동은 드라마나 노래를 넘어서 코미디나 여러가지 버라이어티 쇼 쪽으로도 진출하고 있었다.

아이돌 시대 초기에 데뷔한 유명한 여자아이돌 그룹으로는 나카타니 미키, 칸노 미호가 있던 '사쿠라클럽 사쿠라반' 이나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진 '소녀대'가 있지만, 오냥코 클럽만큼 그 쇼크가 컸던 그룹도 없을 것이다. 오냥코 클럽은 지금의 무스메 처럼 상당히 많은 아이들을 한 무대에 세우고, 그 안에서의 유닛, 졸업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오냥코 클럽은 '저녁놀냥냥' 이라는 코너에서 나와 호평인 소녀들을 전부 뽑아서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멤버가 얼마나 많았냐면 90년대 초반에 전원이 졸업하고 해체할 때 까지 해고당한 멤버를 포함해 52명이었다.) [주1]

오냥코 클럽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뽑았던 것 자체가 의도적인 컨셉은 아니고, 수많은 남자팬 들의 취향을 맞추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 당시에 '당신도 예능계 공주가 될 수 있다!' 라는 말로 키워진 아이돌이 아닌 일반 소녀들 사이에서 캐스팅이 이루어졌고, 그러다 보니 뽑아놓은 소녀들의 숫자가 좀 많았던 것 뿐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수많은 다른 기획사들도 무분별하게 아이돌을 키워내어 그 당시에 약간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오냥코 클럽은 그런식으로 만들어져  85년에 이 곡으로 데뷔하였는데 그 동안 암묵적이었던 '여고생의 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서 논란이 되었다. 여고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하긴 힘들었으나, 시대가 그렇게 변하고 있었으므로 아무튼 굉장한 인기를 끌면서 오냥코 클럽은 성공적인 데뷔를 해냈다.

모닝구 무스메도 그런 컨셉으로 제작되어 진 걸로 보인다. 할로 프로젝트의 프로듀서인 층쿠가 오냥코 클럽의 팬클럽이었고, 18번 멤버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그 외에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일본 예능인 중에는 가장 좋아했던 아이돌을 오냥코 클럽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활동은 그만큼 굉장히 활발했고, 기획사는 많은 수익을 얻었다. [주2]

오냥코 클럽은 그 자체의 한계 -유닛을 교체하는 식으로 그 그룹의 매력이 그대로 유지되느냐?- 도 있었고, 대부분 탈퇴하고 졸업하여 나중에 세명까지 남게 되었지만 결국 그 힘이 다해서 사라져버렸다. 현재까지 방송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한 멤버는 일본의 연인, 기무라 타쿠야의 부인인 쿠도 시즈카와 쇼 프로나 드라마에서 활동하는 와타나베 마리나, 고쿠쇼 사유리 정도이다. 대부분의 멤버는 기억속으로 묻히게 되었지만 현재도 그들의 팬들은 그들을 기념하는 영상 공연을 열고있다. [주3] 모닝구 무스메도 힘이 다해 이렇게 될지, 아니면 층쿠의 기량으로 계속 이어갈 아이돌이 될지는 지켜 볼 일이다.

[주1] 일본의 예능 산업은 우리 쪽 보다 더 엄격한데, 키워지는 대상들은 기획사내에서 영향력이  생길때까지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사생활을 철저히 통제당한다. 게다가 월급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어느정도 확고해지려면 한 회사내에서도 치열한 경쟁과 자기 개발을 해야한다. 이것은 이미지로 먹고 사는 어린 아이돌들에겐 더 심해서 그 유명한 쟈니즈에는 우리나라 막나가는 연예인들에게는 상상도 안 갈 여자금지 담배금지 술금지에 통금시간이라는 규칙까지 있다. 도저히 상품의 가치가 없거나, 큰 물의를 일으킨 경우에는 '해고' 라는 처분이 이루어진다. 물론 멤버들이 이것을 깨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도 살아 남으려면 기획사에서 버릴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자기 입지가 있어야 하겠지만.

[주2] 오냥코 클럽은 87년 10월에 유우아케노냥냥(저녁놀냥냥)이 종영할때까지 싱글 1553만장, 앨범684만장, 비디오31만장, 서적183만부를 팔아치웠다.

[주3] 38번 멤버였던 쿠도 시즈카의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그녀는 유달리 주목받아 솔로로 데뷔하여 활동을 하다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여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싱어송 라이터와 사업가 등으로의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 아이돌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보여주는 예의 하나.


*오냥코 클럽 데이터 출처 여왕의 교실




80년대~90년대의 아이돌인 CoCo도 다시 부른적이 있습니다.



10년전 아이돌 답네요

여기서 오냥코 클럽이라함은...
80년대의 아이돌 스타그룹으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러브레블루션 21 PV

2007/06/15 00:30 | Posted by Gendou

러브레블루션 21 PV

러브레블루션 21 콘서트

2007/06/15 00:25 | Posted by Gen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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